


당신을 저주할 거예요.
Aden
OWNER. 곰팡
Dawson
어린 양
Markus
그것
OWNER. 낙원상가
그 저주가
아주 오래 가길 바라.

고대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어느 경전은 이런 문구로 시작한다; 다친 염소를 보살피지 말라. 이러한 문구가 어째서 경전의 도입을 장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한 이유를 아는 이들은 지금 이 시대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신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이러한 문구가 쓰이게 된 경위가 분명 경전의 초판본에는 남아 있을 것이며, 이 의문의 문구를 해석하기 위해서라도 초판, 혹은 그에 준하는 판본의 발견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닌 게, 현재는 어느 낡고 오래된 집의 벽지로 발려 글자를 잃어가는 중인 어떤 신성한 종이 조각 속에는 정말로 다친 새끼 염소를 보살피는 남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만약 오래 된 집의 벽지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 어떤 변태가 벽에 바싹 붙어 글자를 더듬어 읽어가기 시작한다면, 읽을 수 있는 내용이란 이렇다. 신과 인간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운 어떤 시절, 한 남자는 덫에 걸린 새끼 염소를 발견했다.
염소는 오른쪽 뒷다리가 덫에 물린 채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남자는 처음에 그것이 덩치가 큰 고양이라고 생각해 다가갔다. 그러나 곧 그것이 새끼 염소이며, 이런 모습으로 방치된 지 오래 되어 염소의 호흡이 아주 미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 염소잖아." 남자는 덫을 제거하고 염소를 품에 안았다. 남자의 이름은 에이든이었다. 에이든 도슨.
에이든은 자신의 집으로 새끼 염소를 데려가 침상 옆에 짚을 깔고 염소를 누였다. 당시에는 거주지에서 가축와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에이든이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어서인지, 아니면 새끼 염소를 도축해봐야 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젖도 안 나오는 숫염소에게서 다른 무언가를 기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새끼 염소를 살려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다. 다친 다리를 동여매고 자신이 먹기에도 모자란 우유를 나누어 주었다. 갈색 털을 손끝으로 살살 빗어주거나 때로 아주 오래 품에 안고 박동이 여전한지 가늠했다. 작은 염소의 체온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때로는 자신의 침상 위에서 염소를 꼭 끌어안은 채 잠이 들기도 했다.
염소는 차차 기력을 회복해 나가는 것 같았다. 제 고개도 채 가누지 못하던 작은 몸은 어느 날부턴가 눈이 반짝 트였다. 특유의 가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은 에이든의 뒷모습을 오래 좇았다. 손길이 다가오면 작게 울었다. 다친 다리를 허공에 저으며 뒤를 따라가려는 노력까지 보였다. 에이든은 기뻐했다. "날 알아보는 거야?"
염소가 다친 다리로나마 걸어다니는 것이 가능해지자, 에이든은 염소를 품에 안고 들로 나갔다. 햇빛 아래서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낮잠을 잤다. 자유롭게 풀어두어도 제 시야 안에서 떠나지 않는 새끼 염소를 바라보며 에이든은 남몰래 뿌듯함마저 느꼈다. 그는 윤기가 흐르기 시작하는 염소의 갈색 털을 쓰다듬으며 염소가 건강해지고 있는 것에 기뻐했다. 염소에 대한 애정, 그리고 보람으로 그는 어째서 이 염소는 단 한 번도 들판에서 풀을 뜯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을 채 떠올리지 못했다.
염소가 뜯지 않은 초목이 무성해지고 새끼 염소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이제는 덫에 걸린 상처마저 모두 아물었을 때 에이든은 염소를 품에 안고 말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야."
"염소야, 너는 이제 달릴 수 있어." 염소는 작게 울었다.
"다친 것도 다 나았고, 보기 좋게 살도 올랐고." 어리광 부리듯, 염소는 에이든의 품에 이마를 비볐다.
"나도 서운하지만, 넌 내 재산이 아니거든. 네게도 어미가 있거나 주인이 있거나 할 테니까." 염소는 더이상 울지 않았다. 에이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는 점점 커질 거고, 난 널 오래 키울 수도 없어. 봐, 내 집은 변변치 않아서 제대로 된 축사 하나가 없단다." 에이든은 못내 아쉬운 얼굴로 염소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염소는 여전히 울지 않았다.
다음 날 에이든은 염소를 데리고 염소를 처음 발견한 곳으로 갔다. 에이든이 몇 번이나 주변을 확인해 더 이상 그곳에 덫은 없었다. 적당히 나무와 풀이 우거진 주변을 바라보던 에이든은 허리를 숙여 염소를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잘 지내. 보고 싶을 거야." 염소는 길게 울었다.
몸을 돌려 걸어가는 에이든의 뒤를 새끼 염소가 쫓는다. 그러나 작은 염소가 성인 남성의 뒤를 바짝 쫓기란 불가능했다. 에이든은 부러 염소가 자신을 쫓지 못하도록 먼 길을 돌아 돌아 집으로 향했고, 염소는 들판을 몇 번이고 헤매다 결국 무의미한 걸음을 멈추었다. 에이든은 자신의 등 뒤에서 염소의 긴 울음이 들려온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득 지옥에서 아내를 데려오지 못한 음유시인의 설화가 떠올랐다. 뒤를 돌아보면 다시 데려와버리고 말 거야. 약해진 마음을 다잡으며 그는 해가 지는 시간까지 바깥을 배회하다, 아주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그날 에이든 도슨은 근래 들어 처음으로 혼자 침상에 몸을 뉘였다. 그 탓일까? 그는 기묘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그가 두고 온 염소의 탓으로 돌려도 무방할 정도의 꿈이었다. 검은 하늘, 검은 땅, 집채만한 크기의 염소. 염소의 거대한 머리가 제 쪽으로 기울어지고, 사람 머리통만한 회색 눈이 자신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꿈. 거대한 몸집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에이든 도슨은 염소가 자신을 낱낱이 파헤쳐 보고 있다는 감상을 받았다. 그러나 꿈에서도 그는 염소의 갈색 털을 손바닥으로 쓸었고, 지나치게 작은 손으로나마 염소의 콧잔등을 간질이다 꿈에서 깨어났다.
에이든은 그다지 무섭지는 않은 꿈이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등허리가 온통 땀으로 젖은 것도 모른 채.
다음 날, 에이든은 건넛 마을에 사는 형이 의문의 실족사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형의 죽음은 하나의 시작과도 같았다. 먹거리를 자주 챙겨주던 이웃집 아이가 어느 밤 고열이 올라 죽었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뒷집의 청년이 갑자기 목을 맸다. 슬픔을 위로해 준 아주머니는 투신했다. 끼니를 거르지 말라며 식사를 대접해 준 할아버지가 목이 부러졌다. 손이 닿은 꽃은 죽고 동물들은 소리도 없이 도망을 쳤다.
불운은 소리도 없이 퍼졌으나 그 기이함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을에서 가장 성실한 청년으로 손꼽혔던 에이든 도슨은 어느 순간부터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저 사람이랑 말도 섞지 마. 하룻밤만에 변사체로 발견 되고 싶지 않으면! 누군가 에이든의 집 창문에 돌을 던졌다. 나무로 만든 창틀이 박살이 나서 집안이 엉망이 되었지만, 에이든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왜 자신에게 갑자기 이런 재앙이 닥쳤는지에 대해 에이든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낮동안은 집에 없는 것처럼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작은 불빛에 의존해 집안을 돌아다녔다. 종종 그는 기도했다. "신이시여,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결과만 두고 말하자면, 신은 그에게 응답하지 않았다. 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 왔다. 염소를 보내고 정확히 열세 번째의 밤, 자정을 막 넘긴 시간에, 뿔이 달린 사내의 방문을 통해서.
사내의 방문 이후 에이든 도슨의 삶이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페이지가 유실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적히지 않은 내용이 있는지는 경전의 초판본이 온전한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 뒤에나 밝혀질 것이다. 두 가지 분명한 점은, 그날 에이든 도슨의 집에 방문한 낯선 사내는 어떤 방식으로든 에이든의 집에 들어갔다는 것과, 그 뒤로 에이든은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날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한 달 동안이나 집 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 있을까?
다음 내용에 대한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어느 날, 에이든 도슨의 집에서 고성이 울렸다.'
"난 당신을 잘 돌봐 주었어요. 다친 다리를 치료했고 먹을 것을 나눠주고, 내 침대에까지 들였잖아요. 내 정성과 진심을 다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왜 나한테⋯."
악에 받친 외침은 울음으로 귀결됐다. 집기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 달 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던 집에서 처음으로 큰 소음이 들리니, 에이든 도슨의 존재를 잊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그의 집 근처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에이든의 목소리는 한낮에서 시작해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집 안에서 미약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한 쪽은 명백하게 에이든 도슨의 것이었으나, 다른 한 쪽은 조금 특별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뿔 달린 사내의 모습을 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이 거대한 염소의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그것은 작은 뿔이 달린 아이의 모습이었다고 증언했다.
일렁이는 그림자와 에이든 도슨의 기묘한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밤, 에이든은 침대에 앉아 눈앞의 사내인지 염소인지 아이인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에이든의 눈에 그것이 무엇으로 보였는지는 지금은 죽고 없는 에이든만이 알 사실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에이든 도슨이 그날 그것의 목에 칼을 박아 넣었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경전에선 그 장면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새카만 피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것이 정말로 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끈적한 점액질에 가까웠다. 그것은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을 타고 진득하게 흐르고 마침내 에이든의 손까지 적셨다. 그때의 에이든은 평소보다 마르고 힘이 없었는데, 어떻게 그것의 목에 칼을 꽂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핏발 선 눈을 한 에이든은 목이 반쯤 뜯겨 나가도 미소를 짓고 있는 '염소'에게 말했다. "내 가족을, 친구를 죽여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든 당신을 나는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염소는 웃었다. "네가 먼저, 내가 너를 좋아하게 만들었으면서."
덜렁이는 목을 하고도 염소는 에이든을 기만하듯 웃었다. 기어이 칼날이 목뼈를 끊고 살을 찢어 염소의 목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바닥에 뺨을 대고도 염소는 소리내 웃었다. 회색 눈동자는 두 손을 검게 물들인 에이든에게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목을 잃고 우뚝 선 염소의 몸은 에이든에게 한 발 더 다가간다. "그러지 말고, 늘 하던 걸 하자." 염소의 목소리는 바닥으로부터 들려온다.
"아니야. 아니에요. 나는 이제 더는 못 견디겠어요." 창백해진 얼굴로 에이든은 말했다. "나는 죽어서도 당신을 저주할 거예요."
"이 생이 끝나도 내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며 사세요. 그래야 내가 지금 당신에게 내리는 저주가 유효할 테니까."
끈적이는 악마의 피가 묻은 칼날이 어둠 속에서 빛 하나 반사하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웃음기가 가득한 염소의 얼굴이 잠시나마 굳는다. 잘린 목의 단면이 적나라한 몸을 바라보던 에이든이 염소의 회색 눈과 시선을 마주한다. 칼날의 진행 방향은 에이든 스스로의 목이고, 그는 염소의 목을 끊어낼 때처럼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뼈에 그것을 박아넣는다.
목을 잃어도 허리가 곧던 염소와 다르게 에이든의 몸은 쉽게도 바닥으로 추락한다. 무거운 물체가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무엇 하나가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린다. 쿵, 하는 파열음 뒤로는 소름 끼치게 무거운 정적. 마지막으로 에이든의 망막에 뿔이 달린 남자아이들 몇이 저를 둘러싸고 웃는 모습이 비친다. 마치 그딴 저주가 내게 먹히기나 하겠느냐고 말하는 것처럼.
자, 이제 벽지를 읽는 일은 그만 두도록 하자.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은 염소와, 그 염소에게 잘못 걸린 남자와는 하등 상관 없는 이야기니까.
그러나 이 글을 여기까지 모두 읽은 당신에게 한 가지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역시, 다친 염소를 보살피지 말라. 때로 작은 선의 하나가 당신에게 큰 화로 돌아올 수 있으므로.


B side
(1) 에이든 도슨
(2) 마르쿠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