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생이 끝나도 내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며 사세요.
내 다친 염소⋯.
Aden
Dawson
당신의 저주
OWNER. 곰팡
Mickey
Post
꼬리를 문 악마
OWNER. 낙원상가
이리 와.
나와 굴레 위를 걷자.
에이든 도슨 & 미키 포스트 · 마르쿠스

― 오늘은 염소 이야기를 해 줄게.
천막 안의 조명이 꺼지면 아이들이 숨을 죽인 채 옆자리 친구와 어깨를 붙이고 앉는다. 입구로부터 가장 먼 쪽에 놓인 탁자 위를 비추는 작고 강렬한 조명만이 환해진다. 무대를 꾸며 놓은 듯 드리워진 흰 천 앞으로, 실이 연결된 인형들이 인형사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가, 힘차게 뛰어노는 염소가 되었다가 한다. 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인형이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무대 중앙에서 아이들을 향해 허리를 굽히자, 인형사의 나직한 어투가 이야기의 서막을 알린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어떤 불행한 귀족이 한 명 살았단다….
젊은 귀족의 이름은 에이든 도슨이다. 성품이 곧고 다정해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의 인망을 칭찬하는 이들이 많았지. 도슨이라는 이름을 쓰는 청년은 저택에 에이든을 제외하고도 한 명 더 있었는데, 헨리라는 이름의 그 청년은 제 동생을 시기해 에이든의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훼방을 놓기 일쑤였다. 그래, 여기까지는 흔하디 흔한 귀족 가의 형제 싸움이다.
모든 일의 발단은 헨리 도슨이 에이든 도슨의 팔을 부러트리면서부터다. 실수였어. 그렇게 말하며 주춤주춤 도망치는 형을 붙잡아 문책하는 대신, 에이든 도슨은 사용인을 시켜 새 노예를 샀어. "키가 크고 듬직하면 좋겠어. 오갈 곳 없는 이면 더 좋지. 제 몸을 아끼는 법을 모르는 노예, 나를 지키다 죽어도 모를 전투 노예로 한 명 구해다 줘." 잔인한가? 잔인하지. 그러나 귀족들의 사고방식이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단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쓰다 버려도 괜찮을 물건으로 보는 거지. 오, 어린이들에게는 너무 과한 이야기였구나. 각설하자.
아무튼 도슨 가의 사용인은 둘째 도련님의 말을 충실하게 따랐단다. 그는 형무소엘 갔어. 사형수 중 돈을 받고 귀족가에서 생활하며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전투 노예를 구한다는 말에 형무소의 문지기는 곧 인상이 사나운 청년을 하나 끌고 와 그의 발치에 무릎 꿇렸다. 사납게 뜨인 회색 눈은 인간의 것이 아닌 광기로 번들거렸어. 사용인은 박수를 쳤다. "이만하면 우리 헨리 도련님도 더 이상 에이든 도련님에게 기행을 저지르진 못하시겠지." 마차에 짐짝처럼 노예를 싣고 가며 충직한 사용인은 기쁘게 중얼거렸다. 그가 지금 무엇을 도슨 가로 운반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주인과 노예, 그러니까 에이든과 미키는 그렇게 만났다. 한쪽은 의자에 앉아 다친 팔을 매만지고 있었고, 다른 한 쪽은 속박당한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지. 처음으로 시선이 마주쳤을 때 에이든은 문득 경전의 한 구절을 떠올렸어. 맹세코 첫 인사로 그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을 텐데.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에이든은 마치 홀린 듯 이렇게 말했어. "다친 염소를 보살피지 말라는 속담에 대해 알고 있나요?"
미키, 미키 포스트는 그 말에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걸 배울 만큼 넉넉한 집에서 자라지 못해서 말이야."
미키의 말에 에이든은 그저 고요히 고개만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경전의 가장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구절이에요. 왜 이런 구절이 적혀 있는지, 어떤 이야기가 얽혀 있는지 잘 알려지진 않았죠. 뭐… 선의를 쉽게 베풀지 말라는 뜻으로도 읽히고, 염소는 흔하게 악마에 비유하곤 하니까 악마를 조심하란 뜻도 되겠죠."
"그럼 네 생각엔 어떤 해석이 어울릴 것 같은데."
미키 포스트는 특유의 건들건들한 투로 입을 열었다. 어투만 두고 보면 마치 에이든과 동등하게 자리에 앉아 티 타임이라도 즐기는 사람 같았어. 본인이 꽁꽁 묶인 채 새 주인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라는 사실은 잊은 것처럼 굴었지. 에이든은 그를 무례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를 계속할 뿐이었지.
"내 생각에 저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친 염소를 보살필지 말지가 아니에요. 누가 다친 염소인지 판별하는 일이지."
"색다른 관점이네."
"나는 형이 하나 있어요. 그게 당신을 고용한 이유예요."
"지루하군. 권력 싸움? 후계 싸움?"
"그런 단순한 문제였다면 편했겠지. 형은 그냥 나를 질투해요.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여전히 그 마음에 불안이 깊어 가끔 이렇게… 나를 공격하곤 하죠."
에이든은 그 말을 하며 부목을 댄 팔을 들어 보였어. 부러진 팔은 붙으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다친 염소'는 누굴까요?"
에이든은 미키를 바라보며 물었어.
"팔이 부러진 나? 아니면, 내 팔을 부러트려 두고도 영원히 불안에 떠는 형?"
"글쎄. 내 생각엔,"
"아니면, 이 형제 싸움에 개입하게 된 새 노예?"
"……."
"뭐가 됐든 내 부모님은 내 형을 '다친 염소'로 보죠. 보살펴서는 안 되는. 그러니까 당신은 날 돌봐야 해요."
에이든의 설명은 군더더기가 없었지만, 미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강렬하게 그 말에 반항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돌봐? 뭘? 누구를? 내가, 너를?
애초 돌봄, 혹은 수호, 또 다른 말로는 보호가 전제된 고용이라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었지만, 미키 포스트는 코웃음을 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것은 그의 천성과 너무나 반대되는 개념이었던 거야. 그래서 그 순간 미키 포스트는 결심했다. 어느 날, 이 유약한 주인이 자신을 완전히 신뢰하게 되는 날에, 그의 등에 직접 칼을 꽂아 넣겠다고. 잔인하기까지 한 미소를 지으며 미키 포스트는 고개를 끄덕였어. 표면적으로는 에이든의 말에 대한 동의였지만, 사실 그건 그냥 새롭게 한 결심을 다지는 행위나 다름 없었다.
"에이든 도슨이에요. 잘 부탁해요."
뒤늦은 통성명과 함께 속박이 풀리자, 미키는 웅크린 몸을 일으켜 마치 그와 동등한 존재처럼 악수를 청했지.
"미키 포스트다. 편하게 불러."
자, 그 날 이후 두 사람은 어땠을까?
그래! 많은 추측이 들게 하지? 그렇지만 두 사람은 나름대로 잘 지냈단다. 다친 염소고 나발이고, 요주의 인물이었던 헨리는 어째선지 더 이상 에이든의 방 근처에 오지 않았거든. 그게 동생의 팔을 부러트렸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하루 24시간 온종일 동생의 곁을 떠나지 않는 새 노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헨리가 잠잠해지자 미키는 오히려 저택의 생활이 심심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어. 위험한 일들이 많을 것 같아서 순순히 끌려온 거였는데, 도슨 가는 기본적으로 헨리의 돌발 행동을 제외하면 조용하다 못해 정적인 곳이었거든.
미키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에이든의 등 뒤에 붙어 있는 것 뿐이었어. 종종 에이든이 사냥을 구경하고 싶어 하면 활이나 칼을 들고 저택 뒤편의 숲으로 가 꿩이나 사슴 따위를 잡아 오는 일이 특별한 일의 전부였지. 미키는 전문 사냥꾼이 아니었기 때문에 숲에서 동물들과 씨름하다 보면 종종 몸에 상처가 생기곤 했는데, 에이든은 그럴 때마다 굉장히 미안한 표정으로 불편한 팔로나마 손수 그를 치료해 주곤 했다.
미키 포스트는 그럴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어. 이 인형극이 삼류 연애소설이었다면 아마 이쯤에서 미키 포스트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느꼈겠지만, 애석하게도 내 인형극에는 마냥 아름다운 사랑이란 없단다. 미키의 가슴을 날카롭게 긁고 지나가는 형체 없는 무언가는 사랑 같은 달콤한 감정이 아니었어. 그건 아주 불쾌한 감각이었지. 미키 포스트라는 남자는 옛적부터 기묘한 기시감 하나를 품고 사는 사람이었는데, 바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고 돌보는 이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은근한 파괴의 충동이었다. 상대의 걱정을 당연하게 여기고 무자비하게 취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설령 상대에게서 끔찍한 저주를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니,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무너지는 그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미움을 받는 것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합리적인 생각. 그것은 미키 포스트라는 남자의 인생을 이미 여러 번 망가트린 위험한 충동이었어. 사형수라는 신분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어느 날, 미키 포스트는 도슨 가의 정원 한 가운데에 서서 깨닫고 만 거야.
아! 내가 이 생 내내 찾던 것이 바로 너였다. 너의 그 무너지는 얼굴이었다!
그날은 에이든 도슨의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었어. 왕진을 온 의사는 에이든 도슨의 팔이 거의 다 나아간다고 말했고, 그동안 그리지 못했던 그림을 곧 그릴 수 있게 될 거라는 희망적인 말을 남기고 떠난 날이었다. 에이든은 아직 통증이 남은 팔로나마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서 들뜬 얼굴로 작은 캔버스와 목탄을 든 채 정원으로 나가 풀밭에 앉았지. 미키는 언제나처럼 그의 반경 몇 미터 안에서 지루하게 풀잎을 뜯고 있었어. 불안한 발소리는 그때 들려왔다.
풀을 밟는 소리가 들리는 곳엔 흔들리는 시선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놀랍도록 에이든과 닮아 있었기 때문에, 미키는 그를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바로 헨리 도슨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 헨리는 불안한 어투로 에이든에게 몇 마디를 건넸어. 그러나 그것은 대화의 형태가 아니라, 그저 독백에 가까운 중얼거림이었다. 미키의 시선은 줄곧 헨리가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나이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저것으로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에이든 도슨은 일어나서 헨리 도슨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형." 나직한 부름이 바람을 타고 흩어질 때, 미키 포스트는 에이든이 헨리를 향해 공격 의사를 드러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미키는 잠시 서서, 자신이 고용된 이유와 목적에 대해 생각했어. 돌봄이라고 했던가, 보호라고 했던가. 아! 그게 다 무슨 상관이지? 미키 포스트는 갑자기 이 모든 게, 하나의 거대한 인형극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의 연극 속에서 인형 하나를 부수기로 결심했다. (콰직!)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잖아. 자신이 고용된 이유, 이 생의 전반에 걸친 기묘한 기시감, 그 모든 것의 정답으로 가는 데 있어서….
저런. 놀랐니? 이건 그냥 인형일 뿐이란다.
헨리의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추락할 때, 미키는 에이든을 보고 있었어. 그리고 그때 안 거야. 아, 찾았다!
"에이든. 너, 나를 용서하지 않겠구나."
그건 확신이었어. 아니 통찰이었어. 영원에 가까운 절망과 미움, 좌절, 분노, 그 모든 게 모여 악마의 피를 매개로 해 제게 내려진, 영혼을 지배하는 저주에 대한 이야기였어. 결코 용서는 받지 못할 다친 염소는 나약한 인간의 몸에 갇혀 몇 번의 생과 사를 겪어냈고, 경전의 잉크가 빛이 바래져 어느 허름한 집의 벽지로나마 겨우 기능할 적에, 이제는 사라진 어느 이야기 속의 존재가, 손에는 가장 묻히지 말았어야 할 피를 묻힌 채, 다시 한번 에이든 도슨의 앞에 서 있는 거야.
순간에 미키 포스트가, 아니 마르쿠스가, 아니 내가 느낀 그 희열에 대해 알겠니? 아! 이제 나와 너는 같은 존재가 되었다. 네가 죽을 때 나도 죽을 수 있고, 내가 죽는다면 너 역시 죽는 거야. 삶의 지속은 오로지 나와 함께여야 해. 이런 형태로나마 네게 영원을 약속할게. 감히 죽음 따위가 우릴 가를 순 없어. 감히 그 어떤 굴레가 우리를―
손과 발이 제멋대로 그에게 뻗어갔다. 그 망연한 표정이 기꺼워서. 부수려고.
(툭.) 그러나 미키는 그에게 닿지 못했어. 그의 등 뒤로 수 개의 창이 날아와 박혔지. 고깃덩이를 저미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몇 번 울리고, 그의 가슴팍이 붉게 물들었어. 지금 쓰러진 이 인형처럼, 그는 에이든에게 닿지 못한 채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둥근 동공의 회색 눈동자가 에이든을 올려다보았을 때, 에이든은 차가운 무표정으로 울고 있었어. 미키는, 에이든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단다. 지금도 잘은 모르겠어. 걘 그때 왜 울었을까? 왜 화를 내지도 않고, 왜 고함치지도 않고, 그 자리에 선 그대로, 눈물 자국을 얼굴에 난 금처럼 매단 채로.
식어가는 미키의 뺨에 에이든의 차가운 손끝이 닿았다. "내 다친 염소…." 에이든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똑똑히 들었거든. 난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들은 건 잘 잊지 않아. 그게 에이든 도슨의 말이라면 더더욱.
자, 염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란다. 사람은 셋, 다친 염소도 셋 나오는 이야기지. 재미있었니? 돌아갈 때 염소 조심하렴.
인형사의 웃음 섞인 말에 아이들이 겁을 먹고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흰 천으로 만든 무대 위에는 목이 부러진 인형이
하나, 등에 나무로 된 창이 꽂힌 인형이 하나, 그리고 그 사이에 힘없이 주저앉은 인형이 하나 있다.
인형사가 인형들을 수거하기 위해 인형을 고정한 실을 당기는 순간, 툭, 낡은 실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아 있던 나머지 인형 하나마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B Side
(1) 에이든 도슨
(2) 미키 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