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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알려 준 대가로 존재를 증명할 것. 수단은 맹종(盲從)이라.

기다렸지?

약속에 값 치르러 왔어!

Joshua

Weaver

세계의 항해자

OWNER. 제니

Levi

Tiernan Arduino

앙겔로스의 최후 기록자

OWNER. 에비

약속이라니, 누구신데요?!

​그 맹약은 이번 삶에서 이루어졌다.

Cowards

P L E D G E  I T  T O  F A T E

조슈아 위버  &  레비 티어넌 아두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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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本篇: 存在記錄
 

​

기록이라는 건 정말 아름답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존재를 증명하는 단 하나의 수단이거든요.

 

​

“그거 들으셨습니까? 최근 신의 경전을 필사하는 사람이 늘었다는군요.”

덕분에 사장되었던 신화도 떠오르고 있고요, 상기된 말이 길게 늘어짐에도 남자는 말없이 돛을 펼쳤다. 재잘대던 것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남자가 건성으로 대꾸했다. 그것 참 흥미로운 이야기네. 상대방이 입을 비쭉이며 투덜거렸다.

 

​

“적어도 사람을 쳐다보며 대답해주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은 너무 섬세하구만.”

“조슈아, 당신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하지 마시고요.”

남자, 조슈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팽팽해진 돛이 바람을 받기 시작하니 배에 속도가 더해졌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조슈아는 끈끈해진 얼굴을 손가락으로 문대어 핥았다. 묻어나오는 짠 내에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바닷바람은 왜 이렇게 짠 지 모르겠어. 상대가 조슈아를 애 보듯 보며 한심하게 대꾸했다. 뱃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합니까.

 

​

“그래서 뭐, 기적이라도 일으켜줘야 하나. 아하, 그래. 황금비라도 내려줄까?”

“그런 걸 할 줄 알면, 정말 당신을 신으로 모실 텐데요.”

“하하! 인간들은 말이야. 이렇게 증명해주지 않으면 도통 믿질 않는다니까.”

“또, 또! 그런 말……. 됐습니다. 전령의 신이 자비로워 당신을 벌하지 않음에 감사하십시오.”

“전령은 발에 날개가 달려서 어디서도 이야기를 엿듣는다던데. 고작 인간인 내가 벌받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그가 존재하지 않는 신이라 그런 거겠지.”

조슈아가 킬킬거렸다. 신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우리같은 사람으로 환생할 지도 몰라. 밧줄 하나를 쥔 채 돛대에 매달려 있던 그가 가볍게 뛰어 갑판 위로 착지했다. 통통거리며 뱃머리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상대는 고개를 내저었다. 참 가벼운 사람이다. 말도, 행동도. 발에 날개가 달렸다는 그 신이 존재를 다하여 새로운 삶을 부여받았다면 분명 저런 느낌이렷다.

 

​

“고대의 기록에는 그의 뜻이 분명하게 남아있던데요.”

상대의 말에 조슈아는 가뿐하게 웃었다.

“그건 과거지. 신은 말이야. 그렇게 전지전능하지도 못 해. 기적 따위, 열두 번 일으켜봤자 잊혀진다면 존재하지 못하는 법이거든.”

“그렇다면 그는 사하였다가 다시금 생을 얻은 신이 되겠군요.”

“왜?”

“다시 그의 전언을 필사하는 자가 있으니까.”

“하하! 누군지 몰라도, 그것 참 복받은 신이구만.”

조슈아가 보란듯이 뱃머리 너머를 고갯짓했다. 상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저 멀리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

“조슈아. 찾는 사람이 있다고 했죠?”

“응. 아마 여기 있을 거야.”

“왜 이렇게 근거 없이 당당합니까.”

“확실하니까. 느낌이 있어.”

“그 느낌 타령으로 대륙을 반 바퀴나 돌았는데요?”

“이번엔 진짜야. 소문을 들었거든.”

“제발 맞았으면 좋겠네요.”

 

대양을 건너 마침내 새로운 땅에 도달한다. 긴 항해에 종지부가 찍힌다.


 

항구란 매 순간 새로운 소식이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물론 오늘도 따끈따끈한 안줏거리가 배달되었다. 들었어? 못 보던 배 한 척이 들어섰다던데. 아아, 그래. 돛에 시커먼 해골을 그려넣은 해적선 말하는 거지. 평온한 항구에 예정에도 없던 사략선이 들어섰단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선장이 시뻘건 머리칼을 가진 젊은 사내놈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가 찾는 건 바다 밑 보물이 아니라 웬 사람이라는 것까지도. 저 멀리, 대륙 반대편에서부터 건너올 정도로 찾는 녀석이 대체 누구냐 묻는 질문에 그는 애매모호하게 대꾸하며 웃었다.

“여기에 활자를 기가 막히게 쓰는 녀석이 있다던데. 걔를 찾으러 왔어.”


 

선박이 오고 가는 만에 있는 놈들이란 죄다 물질하는 자들 뿐이다. 이런 시골 항구 마을에 기어들어와 물고기도 아니고 글 아는 놈 찾는 것도 남이 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느낌’은 틀리지 않은 모양인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조슈아에게 대꾸했다.

“그 녀석을 말하는 모양인데, 걔라면 냇가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다.”

“냇가?”

“강물 따라 가다보면 부서진 석상이 하나 나오거든. 그 밑에서 항상 경전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베껴 적고 있단 말이지.”

그 말에 조슈아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낡은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원하는 대답에 대한 보답이야. 내가 황금비는 내리지 못하더라도 금화 몇 닢 정도는 줄 수 있지. 아마 저 돈도 어디서 약탈했거니 싶어 사람들은 이걸 받아도 되나 고민했다. 그러나 훔친 금화면 어떠한가. 가진 자가 곧 주인이다. 사람들은 그가 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주머니를 열었다. 번쩍이는 동전이 가득 담긴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한 사람이 깨달은듯 외쳤다.

“…근데, 현상수배지에서 저 얼굴 본 것 같지 않아?”


 

“이거 진짜 금이에요?”

조슈아가 적선한 금화 하나를 소중하게 쥔 어린 애가 물었다. 조슈아가 소리내어 웃었다.

“왜, 가짜일까봐?”

“금은 처음 보거든요.”

“실컷 봐 둬라. 나같은 노략꾼이 아니면 누가 이런 걸 주겠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다시금 킬킬거렸다. 조슈아는 시선을 옮겨 바닥에 흐르는 물길을 훑었다. 걸은 지도 꽤 됐는데, 사람은 무슨 석상 조각의 그림자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이 꼬맹이 녀석. 데려다 준다더니, 제대로 알려주고 있는 거 맞아? 조슈아의 눈이 의심으로 가늘어지자 아이가 홱 뒤돌아봤다.

​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요. 그런데 왜 그 사람을 찾는 거예요? 이런 금화까지 줘 가면서.”

“약속을 했거든.”

“무슨 약속?”

“믿음이라는 약속이 있었어. 그가 날 존재하게 했거든.”

“…부모님?”

“달라. 그렇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할 길이 없었을 테니 관념적으론 비슷하려나.”

“어려워요. 그래서, 그쪽은 뭘 해주기로 했는데요?”

그 말에 조슈아가 입을 다물었다. 콧소리나 내며 시선을 돌리는 모양새에 아이의 눈이 새초롬해졌다.

“우와…. 아무것도 안 해줬구나. 나쁜 사람. 사기꾼.”

“아무것도 안 해주진 않았거든? 그리고, 걔가 오랜 시간 약속을 지켜줬으니까 지금 이렇게 찾아가는 거라니까.”

“가서 뭐 해주려고요?”

“걔가 모르는 것들을 알려줘야지.”

걔는 분명 재미없게 틀어박혀서 경전이나 붙들고 있을 게 뻔하거든. 그런 녀석이니까. 세상이 얼마나 넓고, 광활하며, 아름답고, 눈부신지 알려줘야지. 생의 찬미를 눈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해 줄 거야.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 위에 햇살이 내려 비쳤다.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윤슬을 담다보면,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한 번 인지한 고독孤獨은 독毒과 같다고 했다. 그것은 피와 살로 스며들어 자리하므로 중독되고 만다고. 참, 누가 한 말인지 정확하기 그지없다. 혼자는 다소 외로운 것 같아. 좀 찾기 쉬운 데에서 얌전히 글이나 쓰면 좀 좋아. 그러나 그것이 주는 충만감은 너무나도 달콤하여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조슈아는 생각했다. 너는 네가 손해봤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어쩌면 진짜 손해본 건 나일지도 몰라. 물론 네가 이 말을 들으면 헛소리 말라고 소리지르겠지만.

 

​

“다 왔다. 저기예요.”

저 잘 찾았죠?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에 부서진 석상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대로, 그 아래에 사내 한 명이 돌에 기대어 펜을 끄적인다. 하하, 하하하. 하하! 조슈아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창공이 내려앉은 머리카락. 그 아래 황금 사막같은 눈동자. 먼 과거를 넘어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자신을 기록하여 존재를 증명해주는 약속의 결실이 여기에 있다. 오로지 너 하나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았다. 조슈아가 달려가 사내의 옷깃을 낚아챈다. 나의 유일한 사도여, 네 기도는 잘 들었으니. 이제는 내가 그 약속에 값을 치룰 차례구나.

 

​

우리의 기록을 이어가고자 내가 왔다.

 

​

​

 

​

 

2) 共存共榮 

 

 

​

엄마 아빠,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라는 말도 슬슬 지겨우시겠죠. 마지막으로 편지를 부친 것이 벌써 2년 전이네요. 이곳은 황금색의 알갱이가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고 양털 같은 구름이 하늘에 겹겹이 찢어져 흐르는 사막입니다. 처음 모래 위를 밟았을 때 느꼈던 열기를 전해드리고파 바람이 깎아냈다는 돌과 선인장꽃을 압화 한 책갈피를 동봉합니다마는 이 편지 또한 3개월 후에나 도착하겠죠. 그때의 저는 또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을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부랑자 같은 꼴이 퍽 심려스러우시겠지만 저는 매일이 정말이지 꿈 같습니다. 

 

'그날' 이전의 저는 오늘의 일과가 내일의 일정이 되기 일쑤였던데다 하루 중 고작 한 시간을 넘기는 것조차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견디는 것에 가까웠으니까요. 요즈음은 때때로 요일과 일자의 구분마저 잊을 만큼 정신없는 순간들을 보내고 있답니다. 그래서 만족스러우냐 하면, 저는 가끔 이 변화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전하겠습니다. 정작 이 일상을 가져다준 당사자 -두 분께서는 간혹 그에 대해 납치범이라던가, 사기꾼 같다는 표현을 쓰시지만-는 그 말을 들으면 알면 잘하라는 양 한껏 으스댈 테니 어디에서도 입 밖으로 내뱉은 적 없지만요. 글로 적은 것도 처음입니다. 왜냐면 제 동행인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눈치가 빠른 데다가 툭하면 저에 대해 몹시 잘 아는 양 굴거든요. 어쩌면 이 편지 내용도 짐작하고 있을지 모르죠. 어디선가 뒷머리에 손을 괴고 누워서는 제가 은혜를 아는 녀석이라며 뿌듯해하고 있을 얼굴이 제법 선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녀석에 대해 말씀드렸던가요? 처음으로 보낸 편지에 저는 납치 당하거나 죽은 게 아니라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던 기억은 있지만 정작 함께하고 있는 그 애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실은 적어보려 노력은 많이 했습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여즉 잘 모르는 구석이 한가득이라 몇 장 남지 않은 양피지를 잉크로 적시기 일쑤여서요. 제가 아는 거라곤 조슈아라는 이름. 해적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이미 세상 온갖 곳을 나다닌 양 모르는 곳이 없고 말솜씨가 수려하며 신 걸 좋아한다는 것 정도일까요.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좁혀 쓰면 한 줄 남짓한 정보가 딱히 불안하거나 불만스럽진 않습니다. 그 이상의 것은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들어봤자 진실일 것 같지도 않고 말입니다. 우습지요? 원래의 제 성격이라면 녀석의 부모님이 대체 어떻게 그를 키웠기에 저 모양일지 투덜거릴 법도 한데.

 

솔직히 그 애는 배려심이 깊거나 친절하진 않습니다. 허리부터 망가져 다 부서져 가던 신상에 기대 성경을 필사하던 제 앞에 나타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며 뒷덜미를 잡아끌고 가버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요. 저런 성격 탓인지 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 대부분은 마치 갇혀 자란 짐승을 한심해하듯 우쭐대거나 어린아이를 대하는 짓궂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꼭 신이라도 된 양 자기중심적이기 그지없는 데다 제게 무언갈 해 줄 때마다 과시해 대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게 몹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누군가를 받들거나 존경한 적은 딱히 없는데도요. 어쨌거나 제 인생을 바꿔 놓은 사람이라서일까요. 아니면 얼굴을 맞대고 있는 동안 미운 정이라도 든 건지. 뭐, 아무래도 좋지만요.

 

짧은 편지를 슬슬 줄여야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문에 구멍이 날 것 같거든요. 기다리라고 말해도 늘 열어줄 때까지 작정하고 문을 두들겨서요. 바깥에 별이 아름다운가 봐요. 사막에서 보는 별은 날에 따라 황금의 비처럼 보인다고도 해서 퍽 기대가 됩니다. 두 분이 계시는 곳에도 제가 보는 별이 함께했으면 하네요. 

 

그렇게 이 편지가 무사히 닿기를 모든 언어와 예언의 주인 되시는 신께. 바오로, 신들의 전령이며, 바르나바의 명령을 전달하는 잊혀진 사자(使者)에게 빌겠습니다.

 

...


 

PS. 

슬슬 언제쯤 돌아올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으시겠죠.

확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아무래도 이 여행은 이후로도 꽤 지속될 성싶습니다.

 

아직 녀석이 제 삶의 기록에 온점을 찍을 생각이 없어 보이거든요.

​

Cowards

​​

(1)  조슈아 위버

​​

(2)  레비 티어넌 아두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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